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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가 뿔났다

by 행복한노너 2024. 9. 5.

나는 남편, 딸하나 셋이 살았다.
5년 전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친정 부모님과 합가 했다.
친정과 합가 한다고 할 때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좋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남편도 찬성해서 우린 그렇게 합가 했다.
 

 
 

친정엄마의 불편한 사랑?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느라 일을 쉬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쯤 되니 다시 일하고 싶어졌다.
일을 시작하려니 초등 고학년이지만 아이 걱정이 앞섰다.

이때 엄마가 합가를 제안하셨다.
 
친정집은 작은 빌라였다. 엄마는 그 빌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셨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나는 친정과 합가하면 일하면서 딸아이 걱정은 안 해도 되고 엄마는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고 일석이조라 생각했다.
 
그렇게 합가를 쉽게 결정했지만 시작부터 엄마랑 나는 삐끄덕 거렸다.
엄마도 나도 둘 다 힘들줄 몰랐던 거다.
 
엄마는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리고 엄청 깔끔하시다. 평생 한결같다. 하루도 집안일을 쉬어 본일이 없다. 힘들고 짜증 나도 집안일은 쉴 수 없으니 쿵! 쾅! 콱! 시끄러운 소음이 만들어진다. 그 소음은 엄마 화났다는 소리다. 엄마는 몸이 힘들면 진통제를 먹고 집안을 쓸고 닦아야 맘이 편한 분이다.  요즘엔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통증에 자다 일어나서 진통제를 드신다. 언제부턴가 진동제 먹는 것까지 루틴이 되어버렸다.
 
나는 자라면서 느리고 게으르다는 엄마의 타박을 받고 살았다. 뭘 해도 엄마의 기준에 미달했던 것이다.  어떤 경우도 엄마의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엄마는 집안일에 관련된 모든 걸 힘들어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벌써 70세가 되어버린 엄마가 매일 진통제를 2알 이상 드시면서 집안일을 하시는 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만하시라고 해도 듣지 않으신다. 매일 아침 8시면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하루종일 집안에서 만보 가까이 걷는다. 점점 몸이 힘들어지는데 마음은 변함이 없다. 엄마의 성실함은 최고다. 다 좋은데 이제는 연세를 고려하시면 좋겠다.
 
 
 

합가 장점과 단점

장점은.... 엄마가 곁에 있어 좋다는 것. 
 
단점은 내 입지가 작아진다는 것.
합가 전에는 몰랐는데 밥 해주고 청소 해주고 빨래해주는데서도 가족 간 끈끈한 유대가 생긴다는 걸 느꼈다. 집안일을 친정엄마가 하시니 내 자리가 없어지는 느낌이 드는 게 단점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엄마가 밥 해주고 다해주는 데 정말 편하겠다고 부럽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그런 사랑이 불편한데. 엄마한테 집안일 힘든데 내 일은 내가 한다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너 힘든데 뭐 하러, 그러시곤 엄마가 다 하신다. 집에서 밥 덜먹고 빨래 숨겨놓고 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뭐 하나라도 더 싸주시고, 숨겨둔 빨래는  귀신같이 다 찾아내서 빨아놓으신다. 감사한 일인데 불편하게 느껴지는 게 단점이다. 아무리 엄마한테 노땡큐를 외쳐도 엄마는 괜찮다며 듣지 않으신다. 
 
 
 

엄마가 뿔났다

70대 중후반 이신 아빠는 이제 일을 그만두신다. 아빠는 이제부터 쉬고 싶다고 하신다. 건강도 많이 안 좋아지신 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푹 쉬시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일하시던 분이 쉬면 급격히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취미가 없고 유일하게 즐기는 것은 술과 노래뿐이다. 술만 마시고 남은 인생을 보낸다는 건 생각만 해도 걱정스럽다. 그래서 일단 노래교실을 다니시라고 권했다. 
 
70대 초반 엄마는 딱 봐도 체력이 고갈되어 보인다. 그 체력을 쥐어짜면서 집안을 쓸고 닦으신다. 엄마는 오래된 건전지처럼 체력 충전이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충전해도 더 많이 소비하니 매일 진통제로 버티시는 것 같다. 
 
엄마처럼 로봇청소기도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지 또 고장 났다.  로봇청소기를 고치면 되는데 나는 잔소리를 아주 듣기 싫게 해 버렸다. 집안에 무선청소기 2대, 로봇청소기2가 쉬는 날이 없다. 하루종일 바쁘다. 그러다 보니 자주 고장 나고 수명도 짧다. 나는 집안일 좀 적당히 좀 하시라고.  청소기 돌리는 소리랑 그릇 냄비 부딪치는 소리가 제일 스트레스받는다고.... 엄마에게 카톡을 날려버렸다. 참았어야 했나 ㅠ
 
이 말로 엄마는 엄청 화가 나셨다. 로봇청소기도 치워버리셨다. 그리고 집안일도 안 도와주면서 그런다며, 이제부터 도와달라고 하셨다. 난 당연히 알겠다고 했다. 엄마는 모르신다. 안 도와드린 게 아니라 매번 내가 할게 라면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가니 설거지 통에 그릇이 그냥 쌓여 있었다.
거실바닥에는 마른빨래가 뒹굴고 있었다. 
엉망인 집안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낫다.
 
난 그런 모습을 50 평생 살면서 처음 봤다. 엄마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평소 같으면 집에 들어가자마자 배불리 먹고 누워서 쉬었는데,  나는 그릇을 정리해서 식기세척기에 넣고 빨래를 정리했다. 다음날 아침,  8시면 청소를 시작하는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지 않으신다. 나는 우리 방 3곳을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로 박박 닦고 출근했다. 
 
내가 아무리 박박 닦았어도 엄마 마음엔 들지 않았을 거다. 엄마는 며칠째 계속 화 나신 상태이시다. 
나도 엄마 좋아하는 거 하게 두는 게, 스트레스받는 거보다 좋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어젯밤에는 진통제를 안 드신 모양이다.
 
평생 일만 하신 시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려지셔서 움직이지 못하셔서 5년 넘게 요양병원 입원해 계시다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쓰러지기 직전에도 자식들이 일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듣지 않으셨다.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하 신 날에 곧 좋아지셔서 나오실 거라 기대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리고 병원 갈 때마다 시어머니는 체중이 줄고 뼈만 앙상해지셨다. 입원 후 5년이 지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말씀조차 하지 못하셨다. 그때 알았다. 요양병원이라는 곳이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구나. 
 
그래서 더욱 엄마 아빠가 그곳에 가실까 봐 걱정이 된다. 엄마는 뭐 하러 오래 살아, 걱정 마, 내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하신다지만. 시어머니도 요양병원을 가고 싶어서 가신 게 아니다. 
 
100세 시대란다. 엄마아빠가 30년 넘게 사실수 있다. 제발 건강하게 집에서 사셨으면 좋겠다. 이런 내 맘도 모르고 화내는 엄마 때문에 속상하다. 엄마가 뿔났지만 이번기회에 생각의 변화가 찾아오길 바란다. 집안일보다 건강에 신경 쓰시면 좋겠다. 살가운 딸이 아니라서 이래도 저래도 불효네.
 
 
유튜브는 이런 나의 상황을 어찌 알고 법륜스님의 영상을 보게 만들었을까. 신기하다.
친정엄마와 통화하면 왜 불편하냐고 법륜스님께 묻는 영상이었다. 법륜스님은 반대로 질문하셨다.
엄마생각과 딸인 너의 생각은 다르냐, 니 생각만 옳으냐? 질문자는 다르다고 답했다.
스님은 그래 누가 옳고 틀린 것이 아니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내 생각과 다를 때 노탱큐라고 말하라고 하셨다.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한 거라고 하셨다. 딸인 너가 엄마에게 서운한 게 있었다면 그건 엄마의 노땡큐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엄마도 나도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해서 문제인가 보다.  둘 다 상대의 배려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말하는데 들어주지 않아서 서운한가 보다. 
 
고맙지만 괜찮아. 노땡큐.
싫어라고 나쁘게 말하지 말고 고맙지만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그런 마음을 온전히 헤아려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질문자는 법륜스님께 질문하기 위해 질문지를 여러 번 고쳐 쓰는 과정에서 벌써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며칠 지나자 유튜브 알고리즘은 법률스님의 다른 영상을 나에게 소개했다. 나이 든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없으니,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맞대응하지 말고, 그냥 네~라고 답하고 돌아서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평화를 지키는 길인가 보다. 

 

엄마에게 내뜻대로 하시라고 강요하지 말고 엄마가 말리든 말든 내가 알아서 집안일을 더하면 되는 것을, 괜히 혼자 눈물을 흘리며 슬펐다 화났다 힘든 1주일을 보냈네.